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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들 시티 밖 세상은 대부분의 요들을 매료시켰다. 트리스타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무장한 트리스타나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소와 사람, 괴물과 마주했다. 물질 세계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요들만 아는 비밀 통로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놀라운 광경도 많이 목격했다. 오로라가 만화경처럼 펼쳐진 북방의 하늘 아래에선 유빙을 건너 이주하는 얼음 트롤들을 보았다. 바다를 휘젓던 군함들이 서로 포격하여 산산이 부서졌을 땐 트리스타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정확하게 일치된 동작으로 끝없이 펼쳐진 남쪽 사막을 향해 행군하는 모습은 요들의 눈에 신기하고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태평하게 세상을 여행하던 트리스타나의 생활은 밴들숲 한 곳이 파괴되면서 끝이 났다. 차원문의 마력을 듬뿍 머금고 자라난 밴들숲은 세상으로부터 요들을 지키는 피난처였다. 일렁이는 햇빛 속에서 꾸벅꾸벅 졸던 트리스타나는 주변의 나무가 불타며 쓰러지자 화들짝 놀랐다. 도끼와 철갑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숲을 휘젓고 다니며 불을 질렀다. 그들을 지휘하는 건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한 마법사였다.
겁에 질린 트리스타나는 몸을 숨겼다. 마법사가 밴들숲 중앙에 있는 차원문에 마력을 집중하며 뭔가를 중얼거리자, 귀를 찢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원문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차원문이 파괴되는 충격은 밴들 시티까지 전해졌고, 요들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트리스타나는 전에 없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숲을 잃어서 느끼는 고통과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자신이 모든 밴들숲과 요들의 수호자가 되어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인간들이 소중한 것을 보호하려고 하는 모습은 종종 트리스타나를 놀라게 했다. 인간들이 반짝이는 금속과 돌로 만든 벽을 지키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방식을 높이 평가한 트리스타나는 인간을 따라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요들들은 근엄한 얼굴로 밴들 시티 경계를 순찰하는 트리스타나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지켜봤다. 또 트리스타나는 음식을 '전투 식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정해진 시간에만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게 있었다. 세상을 여행하며 트리스타나는 강력한 발명품을 많이 보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빌지워터의 흑색 화약 대포였다. 흑색 화약 대포로부터 영감을 얻은 트리스타나는 귀중한 금속 조각을 모아 자신의 귀여운 몸집에 맞는 대포를 주문 제작했다.
일그러진 미소를 띠며, 트리스타나는 대포에 '부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날 이후로 트리스타나는 무수한 위협으로부터 밴들숲을 지켜냈다. 바다뱀 군도의 정글에서 부흐루족과 발로란 출신 보물 사냥꾼들이 비밀 차원문과 너무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벌이자, 트리스타나는 부머를 난사하며 모두 줄행랑치게 만들었다. 또 슈리마 변방의 타는 듯한 사막에선 밴들숲의 비밀 오아시스를 빨아먹는 공허 괴물의 목구멍에 폭탄을 밀어 넣었다.
트리스타나는 밴들 시티의 전설이 되었다. 최근에는 많은 요들이 그녀의 규율 잡힌 생활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어떤 요들은 트리스타나에게 호감이 있는 엉터리 발명가 럼블에게 부머를 흉내 낸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트리스타나는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웠지만, 요들들이 밴들 시티의 통로를 제대로 지킬 수 있게 돕기로 마음먹고 '밴들의 사수들'라는 이름 아래 신병들을 모집해 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트리스타나는 혼자서 정찰에 나선다. 밴들숲을 지키고, 동시에 성가신 훈련병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